제가 보기에 기독교 영성은 전인적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로서 타락한 창조세계에서 살라고 초청하십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 봅시다.
비록 2013년 보고서에서 다루었을지라도 저는 이러한 두려움들이 얼마나 공개적으로 인식되어왔고 북미주 개혁교회 리더들이 얼마나 투명하게 씨름해왔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5월 브리티쉬 콜롬비아 캠룹스에 있는 원주민 어린이 기숙학교 부지에서 215구의 무명의 어린이 시체가 묻힌 것이 발견된 소식이 캐나다를 뒤흔들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수많은 행사에서 저는 코로나 바이러스 및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큼직한 사건들을 돌아보았습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우리 주변 환경의 변화의 증거 뿐 아니라 개인의 태도와 행동의 변화 또한 보게 됩니다.
우리가 자부하는 교단 전체의 장점들이 교인 감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지금쯤 다 해결되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모든 성공사례가 들리는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교단의 모든 부문은 성장전략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의 말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들을 축소시키고 우리 마음 속에서 조롱의 대상으로 삼을 때, 우리는 그들을 사람보다 못한 존재로 만드는 것입니다
지난 해는 힘든 한 해였습니다. 하지만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날 북미주 개혁교회에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교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상호 작용의 과정을 통해 인재를 찾아야 하고, 그들 가운데의 잠재력을 성령의 능력을 통해 발산 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복음주의적”이라는 이름표가 북미에서 특히 미국에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역사적인 근거를 넘어선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이 영적 훈련에 헌신합시다.
하나님은 편애하거나 편파적이지 않습니다. (로마서 2:11; 에베소서 6:9). 하지만 하나님이 민족적, 인종적 차이까지 무시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열린 토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어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다는 것은 공동체의 분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는 기독교인들이 “동방박사”이야기가 갖는 급진적인 의미를 충분히 깊게 묵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은 박해받는 기독교인을 기억하고 존중하며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모두 알다시피 교회는 건물 그 이상입니다.
이는 보수에서 진보까지, 무정부주의자에서 음모론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치적 성향의 사람들에게 위험합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보통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문맥이 모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