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측 진영은 모두 자신들이 느끼는 모욕과 홀대에 부글부글 끓는 분노를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 다양한 방식으로 상대측에 벌을 주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모든 변화와 사회적 혼란 가운데에 교회는 굳건히 서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내 저는 무슨 말을 해야하나 고민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에게 맞서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어둠의 골짜기를 다닐 때에도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 각자의 인생 스토리를 돌이켜 보면, 하나님이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심이 명확해집니다.
성경은 모든 일에 동역하는 협력과 권고의 예로 가득합니다.
만약 제가 이 감염증 사태인 판데믹과 이로 인한 사회 경제적 영향에 대해 걱정이나 스트레스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공황상태에 빠지거나 사재기를 하지 않습니다.
카드: 저는 여러분들께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심을 확실히 알고 이 도전을 마주하시기를 촉구합니다.
변화가 쉽거나 고통스럽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느 쪽에도 절대로 나쁜 의도가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 교회는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기타 영성 훈련을 통해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삶과 공동체를 그리스도를 위해 변화 시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신앙보다 정치로 규정하나요?
제가 한 교회의 담임 목사였을 때, 매년 제가 가장 좋아했던 주일은 “프렌드십 주일”이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왜 하는지, 무엇을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는지 역시 하나님 앞에 중요합니다.
젊은 세대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들은 우리의 가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우리의 말을 듣기나 할까요?
성경에서 생명은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몸과 영혼이 하나님께 속하는 것이고, 다음으로 공동체에 속하는 것입니다.
카드: 만약 제가 완전히 동의하는 기사만 싣는다면 저는 배너를 저의 사적인 확성기로 만드는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솔직히 생각해 보면, 우리 대부분은 ‘너희도 갇힌 것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라’는 교훈을 쉽게 잊고 살아갑니다.
더 많이 아는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에 대해 더 겸손한 경향을 보이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한계를 더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아직 다 안 왔어요?” 어린 아이들을 뒷좌석에 태우고 운전한 경험이 있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질문입니다. 때로는 한 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듣는 질문이지요!
엘리자베스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축복의 말들을 받았지만 자신은 제외되었음을 느꼈습니다. 다른 장애우들도 자신과 비슷한 경험이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젊은이들이 그들의 인생과 소명을 준비하는 데에 광범위하면서도 집중적인 교육이 필요합니다.
정죄는 자신의 잘못은 가볍게 여기면서 타인의 잘못은 비판하여 도덕적 우월감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역자들은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다루는 역할을 선호합니다. 그들은 “다른 직업”이 복음 전도를 위한 기회, 즉, 현실 세계와 연결되는 기회 혹은 다양한 은사를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 혈족주의는 인종 간 결혼을 한 저에게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총회가 이것을 만장일치로 이단으로 선언한 것에 대해 안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