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 교회의 담임 목사였을 때, 매년 제가 가장 좋아했던 주일은 “프렌드십 주일”이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왜 하는지, 무엇을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는지 역시 하나님 앞에 중요합니다.
젊은 세대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들은 우리의 가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우리의 말을 듣기나 할까요?
성경에서 생명은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몸과 영혼이 하나님께 속하는 것이고, 다음으로 공동체에 속하는 것입니다.
카드: 만약 제가 완전히 동의하는 기사만 싣는다면 저는 배너를 저의 사적인 확성기로 만드는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솔직히 생각해 보면, 우리 대부분은 ‘너희도 갇힌 것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라’는 교훈을 쉽게 잊고 살아갑니다.
더 많이 아는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에 대해 더 겸손한 경향을 보이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한계를 더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아직 다 안 왔어요?” 어린 아이들을 뒷좌석에 태우고 운전한 경험이 있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질문입니다. 때로는 한 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듣는 질문이지요!
엘리자베스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축복의 말들을 받았지만 자신은 제외되었음을 느꼈습니다. 다른 장애우들도 자신과 비슷한 경험이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젊은이들이 그들의 인생과 소명을 준비하는 데에 광범위하면서도 집중적인 교육이 필요합니다.
정죄는 자신의 잘못은 가볍게 여기면서 타인의 잘못은 비판하여 도덕적 우월감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역자들은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다루는 역할을 선호합니다. 그들은 “다른 직업”이 복음 전도를 위한 기회, 즉, 현실 세계와 연결되는 기회 혹은 다양한 은사를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 혈족주의는 인종 간 결혼을 한 저에게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총회가 이것을 만장일치로 이단으로 선언한 것에 대해 안도합니다.
변화 자체는 총회연구위원회가 언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개혁주의 전통에 주신 풍성한 지성의 은사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척추는 단단 하면서도 유연합니다. 우리 몸의 중심을 잡으면서도 몸이 움직일 수 있게 해 줍니다. 척추와 같은 태도는 경계의 필요는 인정하면서도 단정적인 태도는 피합니다.
우리 교단의 사역계획 우리의 여정 2020의, 우리가 소망하는 다섯 가지 미래 중 하나는 협력에 초점을 맞춥니다. “우리 교회와 사역들은 모든 사람을 제자 삼으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신실하게 완수하기 위해 우리 커뮤니티와 세계 곳곳의 협력자들과 손잡고 함께 일할 것입니다.”
우리 교단으로서는 우리 중 연약한 자들을 더 잘 보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2018년 총회에 올린 2번 헌의안에 대한 대답으로서 북미주 개혁교회의 권력남용을 다룬 보고서가 2019년 총회에 발표될 것입니다.
확실히 우리 교단의 정체성은 정통 기독교 전통 안에 있습니다.
기독교인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기본 인식을 비판적이고 부정적이라는 데에서 생명을 창조하고 사랑한다는 인식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저는 예방지향적인 사람과 촉진지향적인 사람 중에서 선택한다면, 어떤 사람과 어울릴 것인지 이미 결정했습니다.
세상속에서 기독교인의 참여를 인도해 줄 수 있는 믿음의 리더들이 필요합니다.
현재 워싱턴D.C.의 성경박물관에서는 1800년대부터 영국 선교사들이 노예들의 개종과 교육을 위해 사용했던 희귀 성경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교회와 노회, 그리고 한 교단인 우리를 사용하셔서 제자도를 세우실까요?
우리는 믿음으로 살고 모든 민족에게 빛이 되라고 부름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