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 문화와 소셜미디어의 발전으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전통적인 형태와는 또 다른 새로운 교회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소통은 코비드 사태 이후 곤란한 삶의 여건에서도 대안적인 모임을 제공할 뿐 아니라, 아예 다른 형태의 기독교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인터넷상에서는 개인의 성향이나 상황을 노출하지 않은 채 사람들을 환영하고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운영의 묘를 따라서 모든 사람을 편견없이 대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상의 공동체를 선호하는 이유는 개인을 노출하지 않는 익명성과 함께 사람들의 참여를 관리할 수 있는 통제력입니다.
그러나 인터넷 모임들이 개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며 편리하게 선택된 일체감을 제공하는 반면, 참여자들을 교회가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여겼던 신앙삶의 책임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나는 전통적인 대면모임의 교회로 돌아가야 하는가? 그것이 기독교인이 되는 유일한 또는 최선의 방법인가?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 전통교회의 등록교인이 되는 것이 필수적인 조건인가? 교회가 나의 기독교적 양심에 반하는 결정을 하거나 실행할 때, 나는 어떠한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어떤 이들은 전통적인 교회 밖에 있는 가정교회, 선교회, 카페교회, 그리고 인터넷교회와 같은 다양한 형태를 교회로 인정해야 하며, 교회가 현 세대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교회의 미래에 대해 우려할 때에,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이 자신들의 삶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통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될 이유나 교회로부터 멀어질 이유를 찾는 게 아니라, 사실 자신들의 상황에서 복음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 의미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팬데믹 사태 이후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전통 안에, 그것이 신앙고백이던 교회의 결정이던 또는 행동양식이던, 정체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정체의 실질적인 예를 우리는 교회의 통상적이고 구태의연한 복음 선포에서, 그리고 날로 커져가는 정의실현에 관련된 우려를 대처하는 방식에서 볼 수 있습니다.
복음 선포에 관하여 살펴봅시다. 지난 반세기 동안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들은 개인주의적이고 당장 삶에 유익이 되는 실용적인 시각에서 복음을 이해하고, 결과적으로 좁은 경건주의적 영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몇몇 개발도상국가들의 경우, 과거에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은 다분히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시각으로 (personal and individualistic way) 이해하는 “오직 믿음”이 구원을 보증한다는 단순한 메시지를 환영하였습니다. 지친 아버지들과 어머니들, 과부들이 그 복음을 들으러 주일예배, 새벽기도회, 부흥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오직 믿음”의 단순한 복음은 험난한 상황에서 교회를 성장시켰습니다. 곤고한 삶의 상황에서 성령께서 당신의 교회에 이루신 역사입니다. 그들 대부분이 지금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고 사회적으로 자유로워졌습니다. 과거에 개인적이고 좁은 영적인 개념으로 형성된 복음이해를 가진 그들은 지금 자신들의 신앙이 삶에 어떻게 관련되는지 찾고 있습니다. 신앙이 실제 삶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그들의 신앙이 하늘나라에 고정되어 있는 한, 그들의 대다수는 하나님의 구원이 개인 삶과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보지 못합니다. 그렇게 형성된 교회와 성도들은 삶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와 정의 관련 이슈들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무감각해 집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도 발생하는 비도덕적인 일들로 인하여 사회로부터 비판을 받습니다.
오랜 기독교 전통을 가진 국가의 그리스도인들도 삶을 신앙으로부터 분리하는 현대문화에서 구원에 대한 해석과 의미의 문제에 직면합니다. 신앙이 고통을 겪는 삶에서 그 능력을 살아내지 못하고 단순히 저 세상의 천국을 기다리는 것이라면, 그러한 경건주의적 복음은 구원의 넓고 영광스러운 의미와 능력을 상실한 채 자신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당면한 목회의 과제는 양극화되어 갈등이 많은 사회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살도록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갈라진 정치상황에서 야기되는 여러 가지 갈등들, 성과 성 정체성에 관한 이해와 태도, 그리고 경제적, 인종적 정의에 관한 문제들은 분노, 오해, 편견과 고통을 유발합니다. 점점 더 증가하는 이러한 갈등들은 이미 갈라지고 부서진 사회와 관계들을 악화시킵니다. 교회도 스스로 이러한 갈등을 야기시키고 때로는 자기 일이 아닌 것처럼 지나쳐 버림으로, 교회 또한 이러한 갈등의 피해자입니다.
구원의 문제들
오늘날 목회의 주된 목표는 성도들의 공동체를 세우는 것입니다. 복음이 세상에 이루는 정의, 화목과 연합을 실천하는 공동체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세계를 자신과 화목하신다고 가르칩니다. 성경의 이 기본적인 가르침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들과 주변에서,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당신의 구원을 이루시는가를 질문하게 만듭니다. 개혁신앙은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이 포괄적인 성경의 가르침을 지지해왔습니다. 하나님께 있어서 구원은 개인 영혼들 만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만물을 그와 화목하셔서 회복하시는 것입니다(골로새서 1:20). 개혁신앙은 성경의 창조와 구속을 삼위일체적으로—그래서 인간의 삶을 보는 시각이 편협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에 기초하여 우주적으로 보면서—이해합니다. 거기서 구속은 사람의 죄로 망가진 피조세계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삼위 하나님께서 회복하시는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역사로 조망합니다.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이루어지는 죄인 인간의 구원은 이 광범위한 하나님의 구속의 일부이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우주적인 구원에 참여시키는 영광스러운 소명입니다. 오늘날 목회의 주된 목표는 성도들의 공동체를 세우는 것입니다. 복음이 세상에 이루는 정의, 화목과 연합을 실천하는 공동체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세계를 자신과 화목하신다고 가르칩니다. 성경의 이 기본적인 가르침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들과 주변에서,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당신의 구원을 이루시는가를 질문하게 만듭니다. 개혁신앙은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이 포괄적인 성경의 가르침을 지지해왔습니다.
하나님께 있어서 구원은 개인 영혼들 만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만물을 그와 화목하셔서 회복하시는 것입니다(골로새서 1:20). 개혁신앙은 성경의 창조와 구속을 삼위일체적으로—그래서 인간의 삶을 보는 시각이 편협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에 기초하여 우주적으로 보면서—이해합니다. 거기서 구속은 사람의 죄로 망가진 피조세계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삼위 하나님께서 회복하시는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역사로 조망합니다.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이루어지는 죄인 인간의 구원은 이 광범위한 하나님의 구속의 일부이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우주적인 구원에 참여시키는 영광스러운 소명입니다.
성경이 계시하는 이러한 우주적인 구원의 관점에서, 인류의 구원은 사후에 천국으로 옮겨진다고 생각하는 단순하고 피동적인 이동에 비하여 훨씬 더 영광스럽고 역동적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현재 삶은 천국행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의 대기장소가 아니라, 구원된 새 삶을 그리스도의 기대하심으로 살아가는 영광스러운 현장입니다. 우리의 현재 삶은 하나님의 구원의 시간표에 따라서 고유한 목적을 가집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기 까지, 구속된 그리스도인을 세상을 “다스리는 자”로 위임하시고, 예수님의 말씀으로는 “세상에 보낸 대사”로 갖추어 주셨으므로, 세상에서 우리의 삶은 새롭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구속이 성취하는 새로운 창조세계는 이미 도래하였고, 구속된 이들 사이에 역사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17-21). 그리스도인이 새생명으로 행하는 모든 일은 자신들 삶 뿐 아니라 자신 주변의 하나님 나라에 영향을 끼칩니다. 이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은 기쁜 책임이며, 결코 억지로 해야 할 의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속한 공동체, 가족으로부터 시작해서 교회와 사회와 같은 공동체가 바로 새로운 삶을 사는 현장입니다. 성경의 이러한 광범위한 구원과 신앙, 그리고 삶의 이해는 현세대가 개인주의적으로 그리고 실용주의적으로 이해하는 구원과 성령의 역사에 대한 해독제가 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같은 구원과 신앙의 이해가 성도로 하여금 구원을 재창조적 화목으로 사는 책임을 자동적으로 이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손상하는 대부분의 갈등들은, 그것이 신앙고백에 관련된 것이든지 행동에 관한 것이든지, 고통을 수반합니다. 정의, 화목, 화합에 관련된 갈등은 교회의 결정만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교회가 공동체적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개인적으로 남을 겸손하게 경청하고, 공평하게 분별하는 오래 참는 사랑으로 가능해집니다.
모든 나라와 문화로부터 거룩한 백성을 불러내시는 하나님의 소명을 단지 종교적이고 영적인 현상으로 해석하는 한, 우리는 정의, 화목, 화합을 실천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갈등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성령의 열매를 깨닫고 실천하도록 명령받았습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에베소서 4:2-3). 구속되었으니 구속된 삶을 살아라, 화목되었으니 화목된 삶을 살아라 라는 그리스도의 소명은 신앙심으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서 겸손과 희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사람들 사이에 연합을 이미 이루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더불어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 한 몸 됨을 오늘의 언어로 말한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다양한 양심의 이해를 가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연합을 이루셨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의 결정이나 노력이 사람들 사이에 연합을 이루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명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연합을 기쁨으로 깨닫고, 정의와 화목을 실천함으로 충실하게 그 화합됨을 사는 것입니다.
About the Author
Jay Shim earned his M.Div. and Ph.D. from Calvin Theological Seminary. He served Dordt University as professor of theology for 20 years and retired in 2023. Dordt University Press recently published his book Engaging Faith: My Story in God’s Story.
심재승 교수는 칼빈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와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돌트 대학에서 20년간 신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2023년에 은퇴했다. 돌트 대학 출판부는 최근 그의 저서 Engaging Faith: My Story in God’s Story(믿음의 여정: 하나님의 이야기 속 나의 이야기)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