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배너>가 배달되는 날이면, 할머니는 창가에 앉아 우편을 기다리셨습니다. 라이언 카운티 신문을 제외하면, 할머니가 접하는 바깥 소식은 거의 <배너> 하나뿐이었습니다. 반면 오늘의 저는 수많은 경쟁 매체와 함께 <배너>를 즉각적으로 받아봅니다. 이제 창문이라 해봐야 마이크로소프트 창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와 저, 그리고 여덟 세대에 걸친 <배너> 독자들(무려 160년!)은 두 가지를 공유합니다. 하나는 ‘특별한 백성’으로 부름받았다는 소명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배너(깃발)’입니다.
CRC 교단의 시인이었던 스탠리 위어스마는 1982년에 발표한 시 「순종」에서 이 ‘특별함’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아버지가 주일에 추수를 하지 않고 폭풍으로 귀리가 망가지는 상황을 감수했던 일을 전합니다. 수십 년이 흐른 뒤, 아버지가 왜 스탠이 악명 높은 ‘백인 이탈(도시의 인종 통합과 변화 속에서 많은 백인 가정들이 공동체를 떠나 교외로 옮겨가던 사회적 현상)’에 동참하지 않았는지 묻자, 스탠은 그 안식일의 일을 떠올리게 했고 아버지는 곧바로 이해했습니다. 그것은 위어스마의 말처럼, “우리 같은 서툰 사람들(muddlers like us)”이 삶으로 살아내는 순종의 특별함이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서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저는 동시에 이 말씀을 외우며 자랐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CRC 교단의 여러 교회들을 통해, 저는 예수님을 높이는 이러한 특별함을 분명히 보고 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뉴저지의 그레이스 커뮤니티 채플 CRC는 2005년, 열두 명으로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천 명이 함께 예배드리며, 뉴욕과 호주, 일본, 태국으로 교회 개척의 사명을 넓혀 가고 있습니다.
미국 Southeast 노회는 10년 목표였던 46명의 교회 지도자 양성을 이미 넘어섰고, 이제는 2035년까지 260명의 새 지도자들이 노회 목사 고시를 치르도록 하는 비전을 품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의 뉴 웨스트민스터 CRC나 온타리오의 크로스포인트 CRC와 같은 교회들은 서로 다른 문화가 하나의 공동체로 어우러지는 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또한 텍사스의 라틴계 CRC 교회들은 아이오와의 교회들과 손을 맞잡고 교회 개척에 나서고 있습니다.
플로리다의 선라이트 CRC 성도들은 시편을 현대 음악에 맞춰 암송하고 있습니다. 미시간의 노스 블렌던 CRC는 시편 150편을 150편의 설교로 천천히 되새기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회복을 향한 지속적이고 깊은 기도가 교단 전반에 걸쳐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미국-캐나다 공동 기도 모임에서는 랭리에서 토론토까지, 에드먼턴에서 휴스턴까지 CRC 교단 성도들이 매주 함께 모여 중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복음의 흔적들과, 예수님께서 준비하고 계신 미래를 생각하면 제 마음은 뜨겁게 타오릅니다.
물론 이것이 쉽다는 말은 아닙니다. 복음과 그 복음이 요구하는 순종은 우리의 본능에 어긋납니다. 복음은 자아보다 구주를, 원망보다 용서를, 명성보다 무명을, 성공보다 신실함을, 안락함보다 용기를, 분주함보다 거룩함을, 힘보다 온유함을 선택하라고 부릅니다. 그 길은 때로 분명한 대가를 요구합니다. 특별함은 결코 편안한 자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특별한 백성은 종종 낙심의 화살이 미치기 쉬운 자리에 놓입니다. 시편 60편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banner)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
배너, 깃발이란 무엇입니까. 혼란 속에서 시선을 다시 들게 하는 표지가 아니겠습니까.
또한, 낙심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힘을 건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의 궁극적인 깃발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하나로 모으시고, 흐트러진 시선을 다시 들게 하시며, 마음에 용기를 불어넣으시는 분이십니다. 시련의 한가운데서도, 잔칫상 위에 내걸린 깃발처럼, 주님은 자신의 신부인 우리를 위해 사랑의 배너를 펼치셨습니다.
1866년부터 2026년까지, 활자 인쇄에서 모바일 앱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시선을 한결같이 그분께 두고자 합니다.
우리 <배너>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궁극적인 배너를 가리키며, “우리 같은 서툰 사람들”이 그분의 특별한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힘을 보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할머니의 시대에도, 지금 우리의 시대에도, 창가에 앉아 기다릴 만큼 충분히 값진 일입니다.
About the Author
Lora A. Copley is interim editor for The Banner. She also serves as director of Areopagus, a Christian Reformed ministry at Iowa State University. She and her husband, Joel, have four children and worship at Trinity CRC in Ames, Iowa.